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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대학의 낭만을 상징하는 축제!

대학의 낭만을 상징하는 축제! 1956년 우리대학의 첫 번째 축제가 시작되었는데, 그동안 축제는 교내외의 환경이 바뀜에 따라 형식과 내용 면에서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1950년대

1956년 10월, 개교7주년을 기념해 제1회 대학제가 개최되었다. 연극, 교향악 연주, 체육대회, 모의재판, 학술발표회 등의 프로그램이 3일 동안 진행되었다.

초장기 축제는 평소 학생들이 갈고 닭은 학술과 재능을 뽐내는 프로그램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대학의 축제는 지역주민의 함께 하는 화합의 마당이기도 했다. 축제를 알리는 홍보탑이 동대문에 설치되었고,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수 진행되었다. 인기가수들이 노래와 춤을 선사하는 '시민위안의 밤'도 열었다.

1960년대


1960년대는 대학축제의 외연이 확장되던 시기였다. 1963년부터는 대학만 참여하는 '대학제에서 벗어나, 유치원으로부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등 경희학원 전구성원이 참여하였다. 이때부터 축제의 명칭도 '대학제에서 '학원제'로 바뀌었다.


1960년대를 지나며 경희대학교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축제의 규모 역시 대폭 확대되었다. 입장식, 매스게임, 카드섹션 등 대규모 행사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축제기간 총 관람객수는 7만에서 10만에 이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카드섹션, 매스게임 등의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형형색색의 그림과 문자를 일사불란하게 그려내는 카드섹션, 수많은 학생들이 하나의 몸이 된 듯 표현하는 절도 있는 동작들이 관람객들로부터 커다란 박수를 받았다.

1970년대

1970년대 가장 인기있는 축제 프로그램은 '쌍쌍파티였다. 남녀가 함께 어울리며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적어서였을까. 게임하며 자연스럽게 손도 잡고, 노래와 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쌍쌍파티'는 대학생들이 가장 기대하던 프로그램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학생자치회가 축제를 주도하면서부터 축제의 규모는 대폭 축소되었다. 대학생들만 참여하는 행사로 변화되면서 프로그램도 우리문화 알리기, 사회비판과 풍자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1980~90년대
1980년대 대학축제는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이 시기 축제는 민주화 투쟁과 통일운동을 문화적으로 승화시켜 학생들의 대동단결을 이끌어내는 장이었던 것이다.